두 줄 만으로

너무 센스있고, 따뜻하고, 좋았던 시가 있다.

 

 

벼룩

 

 

 

그대 벼룩에게도 역시 밤은 길겠지.

밤은 분명 외로울 거야.

 

 

 

 

 

진짜 너무 짱짱! 내 스타일이다 ㅎㅎ

벼룩. 몇년에 한번 우리 머릿속에 떠오를까 말까 한 단어

그만큼 존재감이 없는 생명체

그러나 그것에게도 밤은 길고 외로울 거야.

생명이란 다 비슷하니까...

 

 

아.

요즘 학생들이 수학, 영어 1점이라도 더 올리려고 피터지게 하는 대신

이런 거 한줄이라도 읽으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이라면

얼마나 더 공감력있는 사회가 될까? ㅠㅠ

 

 

 

 

 

마음에 드는 시가 왜 이리 많은지... ^^

내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는 분들도 시만이 주는 좋은 느낌을 한번 느껴보고 가시길!

 

 

 

 

 

 

무덤들 사이를 거닐며

 

 

 

무덤들 사이를 거닐면서

하나씩 묘비명을 읽어 본다.

한두 구절이지만

주의깊게 읽으면 많은 얘기가 숨어 있다.

 

 

그들이 염려한 것이나

투쟁한 것이나 성취한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태어난 날과

죽은 날짜로 줄어들었다

살아 있을 적에는

지위와 재물이 그들을 갈라 놓았어도

죽고 나니

이곳에 나란히 누워 있다.

 

 

죽은 자들이 나의 참된 스승이다.

그들은 영원한 침묵으로 나를 가르친다.

죽음을 통해 더욱 생생해진 그들의 존재가

내 마음을 씻어 준다.

 

 

홀연히 나는

내 목숨이 어느 순간에 끝날 것을 본다.

내가 죽음과 그렇게 가까운 것을 보는 순간

즉시로 나는 내 생 안에서 자유로워진다.

남하고 다투거나 그들을 비평할 필요가 무엇인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선물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시집을 난생 처음 구매해서 읽어보는데...

생각보다 시란 좋은 것이구나 하고 느끼고 있다.

 

문학소녀와는 거리가 먼 시간을 살아왔는데

시가 마음에 따뜻하게 와닿는다.

물론 여전히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시도 있지만... ㅋ

 

오늘의 시는 꼭 소개하고 싶어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의 잠언 시집

류시화가 직접 지은 시를 수록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를 골라 엮은 책인데

잠언 시집 답게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단점은 시적인 느낌이 좀 떨어진다는 건데...

아직 시에 초보인 내가 읽기에는 조금 더 산문 느낌이 나는 게 이해하기가 쉽고,

또 수록 시들이 지향하는 바나 코드?가 나랑 잘 맞는 것 같아서 좋다.

 

 

 

 

 

 

잠 못 이루는 사람들

 

 

새벽 두 시, 세 시, 또는 네 시가 넘도록

잠 못 이루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집을 나와 공원으로 간다면,

만일 백 명, 천 명, 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물결처럼 공원에 모여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예를 들어 잠자다가 죽을까봐 잠들지 못하는 여인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와

따로 연애하는 남편

성적이 떨어질 것을 두 려워하는 자식과

생활비가 걱정되는 아버지

사업에 문제가 있는 남자와

사랑에 운이 없는 여자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사람

만일 그들 모두가 하나의 물결러럼

자신들의 집을 나온다면,

달빛이 그들의 발길을 비추고

그래서 그들이 공원에 모여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그렇게 되면

인류는 더 살기 힘들어질까,

세상은 더 아름다운 곳이 될까.

사람들은 더 멋진 삶을 살게 될까.

아니면 더 외로워질까.

 

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만일 그들 모두가 공원으로 와서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태양이 다른 날보다 더 찬란해 보일까.

또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그러면 그들이 서로를 껴안을까.

 

 

 

 

 

 

 

 

 

사람마다 각자 상황과 경험에 따라 와닿는 시가 다르겠지?

나의 경우 이 시를 보고 든 생각이,

마치 심리치료에서 진행되는 심리상담이란 게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수만 명의 사람들이 공원에 나와 저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만약 가능하다면

심리상담사란 직업은 굳이 없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항상 나 자신의 문제보다 가볍게 다가온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은 말하면서 그 과정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낸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어딜 향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깨닫는다

혼자 안고 있으면 너무나 무겁고 길이 보이지 않던 문제가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면서 재정비되고 객관적으로 보인다.

 

 

소통의 방법은 다양해졌지만, 깊이는 없어진 지금.......

짧은 시간 내에 첫인상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어필하는 법은 배우는 반면

천천히 제대로 소통하는 법은 배우지 못하는 지금...

 

 

학생도, 어른도, 노인도, 아이도 예전보다는 더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시가 좋았다. ^^

 

 

 

 

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중략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사실 위 시에서 '평등한'이란 단어를 쓴 것이 많이 낯설게 다가왔다.

기쁨과 평등한 슬픔이라니... 단어가 좀 안어울리는 느낌이다.

작가에겐 평등이란 단어가 어떤 느낌인걸까?

 

 

내가 하늘 위에서 인간을 심판하는 자라고 엉뚱한 상상을 해 보면...

그저 자기의 기쁨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사랑보다, 기쁨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려고 할까?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존재이기에..

나의 기쁨과 플러스가 곧 다른 누군가의 슬픔과 마이너스와 직결된다는 것을

잊고 사는 사람이 많기에...

 

 

슬픔의 경험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워주고

그래서 기쁨에 더 감사하고

기쁠 때도 지나치게 기뻐하지 않고

슬플 때도 곧 지나가리라 담담히 마음먹게 하지 않을까.

 

 

누가 시집을 선물해달라고 해서, 평소 문학소녀도 아닌 내가 이런저런 시를 읽고 있다.

그사람에게 어떤 시집이 어울릴까 생각하면서.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으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박준 작가의 시집을 읽고 있다.

 

 

열개 중 다섯개는 무슨 말인지 의아하고, 4개는 잔잔하게 다가오고, 한개는 확 꽂히는 듯

내가 문학소녀가 아니라 더 그렇다.

 

오늘 읽은 것 중에 제일 꽂힌 시는...!

 

 

 

 

 

 

 

 

이게 진짜지 말입니다 물광이 빛나니, 불광이 깨끗하니 하는 얘기는 이제 고향 앞으로 갓, 이지 말입니다 이건 물불을 안 가리는 광이라서 말입니다 제가 지난 여름에 용산역을 지나는데 말입니다 거짓말 아니고 말입니다 바닥에 엎어 자던 노숙자 아저씨가 제 군화 빛에 눈이 부셔 깼지 말입니다

 

 

....중략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흠집을 대하는 우리의 기본 자세지 말입니다 깊게 파인 흠집을 약으로 메우는 것은 신병들이나 하는 짓 아닙니까

.

....중략

 

 

 

 

흠집은 흠집이 아닌 곳과 똑같은 두께로 약을 발라야지 말입니다 벗겨져도 같이 벗겨지고 덮여도 같이 덮이는, 흠집이 내가 되고 내가 흠집이 되는 저희 어머니도 서른셋에 아버지 보내시고, 그때부터 아예 아버지로 사시지 말입니다 지난 휴가 때도 얼굴도 몇번 못 뵙고

 

....중략

 

 

 

 

그런데 김병장님 참 신기하지 말입니다 참말로 더는 못 해먹겠다 싶을 때, 이렇게 질기고 징하게 새카만 것에서 광이 낯짝을 살 비치니 말입니다

 

 

 

 

 

 

바닥에 엎어져 자던 노숙자 아저씨의 눈을 부시게 하여 깨게 만들만큼 밝은 빛이... 흠집이 내가 되고 내가 흠집이 되는, 벗겨져도 같이 벗겨지고 덮여도 같이 덮이는.. 그런 평범한 어우러짐 속에서 탄생한다는 이야기. 잘난 점만 갖고 사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흠집을 갖고 사는 게 인생사..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발한다?

감동적이야~~

-말입니다 하두 들으니까 가본 적도 없는 군대에 와서 후임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