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범죄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심리 묘사는 부족하고, 감정에만 호소하거나 긴장감만 잔뜩 끌어올린 후 권선징악으로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영화 돈에서는 주인공 조일현(류준열)의 미묘한 심리 변화에 집중하며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심리가 일편적이지 않고 다양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이고 솔직한 주인공이란 느낌이었다.

부자가 되고 싶었다.

초반과 엔딩 대사이자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교훈을 주거나 메세지를 던지지 않는다. 그저 '부자가 되고 싶었다.'는 솔직한 욕망을 이야기한다. 서민 대부분이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명확하다. 돈 없으면 불안하고 여유 없는 한국 사회에서의 생활.. 그걸 탈피하고 싶은 마음.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

 

복분자 농장을 손수 운영하며 일손도 쓰지 않는 부모님이 안쓰럽다.

 

말미에 그의 대사가 마음을 파고 든다. "번호표(유지태)에게 그 돈 다 어디에 쓸 건지 한 번 물어봐 주세요."

부자가 되고 싶은 그이지만, 주식시장을 교란하고 돈을 만지는 것이 그저 '재미있어서' 하는 번호표(유지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와 우리에게 돈은 안락한 삶과 생존의 수단이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승부나 재미의 문제이다. 서민에게 돈은 일정 액수를 넘어가면 그냥 숫자일 뿐, 0이 더 붙고 덜 붙는다고 해서 행복하거나 불행해지지 않는다.

결말 부분에서 조일현이 번호표에 대한 정보를 금융감독원 한지철(조우진)에게 다 넘기면서도, 참고인 조사를 피하기 위해 유유히 지하철을 타고 떠나는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참고인 조사를 받다보면 어느새 피고인이 되어있곤 하더라'는 말을 남긴 채. 도덕적 의무감 같은 숭고한 목적이 아니라 살기 위해, 번호표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의 처지를 탈피하기 위해 영리하게 행동하는 그의 모습이 미워보이지 않는다. 어느 쪽도 100% 믿지 않고 스스로를 방어하는 모습은 비슷한 부류의 다른 영화 주인공들에 비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돈 앞에 갈등하고, 방황하는. 지금 팔까 나중에 팔까 고민하는. 들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 쫑긋하는. 그리고 무엇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우리에게 왠지 위로가 되는 영화였다.

같은 영화도 다시 보면 달리 보인다.

그래서 오래 전 봤던 컨텐츠를 다시 보는 걸 좋아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년 극장에서 보았을 땐 그저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권장하는 주제로만 받아들였다면,

 

2019년 직장인이 되려하는 시기에 바라본 주인공 월터는

자기만의 여행을 떠나려는 도전자이며

그 도전을 하기까지 용기의 무게가 달리 느껴졌다.

 

반복되는 일상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는 우리에게 특정한 역할을 요구한다.

그 워너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쓴 시선을 받게 된다.

 

 

 

그렇게 주어진 역할만을 해내는 데 많은 시간을 쓰다보면

진짜 나를 경험하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다보면 잊게 된다. 역할 지어지지 않은 순수한 나는 누구였는지.

 

그래서

 

가끔은 용기를 내어

진짜 나로 사는 시간을 내어

즐겨야 한다고 영화는 말해준다.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모험, 헛된 상상, 우스운 일

우리가 주로 이렇게 일컫는 것들이

사실은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어 상상해온 일들이 아니었을까?

 

인생에서 상상해보던 것들

새로운 자극을

한 번 경험해보는 시간이야말로 일상과 더불어 꼭 필요할 것이다.

 

 

나의 경우

아름다운 곳,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다는 욕심이

항상 마음 한구석에 존재한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지

 

언제 찍을 거예요?

 

어땐 때는 안찍어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개인적으론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무르고 싶지

 

 

아름다운 것은 누군가 아름답게 봐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고

 

일상을 견고하게 살아내는 것

가끔 역할 지어지지 않은 나의 모습을 용기있게 즐기는 것

모두 아름다운 것에 속한다.

 

지금 이 영화가 유난히 크게 와닿았던 건 아마도,

"직장인이 된다는 건, 멀고 긴 호흡을 시작하는 거겠지." 란 생각에

걱정과 기대가 교차했기 때문일거다.

오랫동안 취준생이었기에 규칙적이고 역할 지어진 직장인의 생활이 부러운 적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지금까지의 가난한 자유를 갑자기 놓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일을 시작하고 언젠가 순수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기억나지 않을 때

그 순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고 

경험할 용기를 갖길 바란다고.

월터가 그러했듯이.

 

 

 
 
 
초반부를 읽을때만 해도 열다섯의 어린 학생과 삼십대 여자의 충격적 사랑의 모양새에, 그것도 육체적 사랑에 포커스를 맞추어 흥미 위주로 그린 책이라 생각했다. 사실 미하엘과 한나가 만나서 사랑을 나누게 되는 처음 과정은 어떻게 보면 역겹고, 한나라는 인물에 대해서 반감을 가질 정도로 이해가 안되는 장면이기는 하다. 그 부분을 읽을때만 해도 한나라는 여인은 젊고 순진한 어린 청년을 잠자리 상대로만 즐기는, 아주 천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부터 한나는 미하엘에게 관계를 하기 전에 꼭 책을 읽어주기를 요구한다. 책을 읽으며 흐름을 따라가는 일은 꽤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그 동안 미하엘도 들끓던 욕망이 진정이 되곤 했다. 한나는 미하엘이 낭독해 주는 책을 들으면서, 직접 참여하여 격하게 반응하며 자기 의견을 말하다가도, 어느 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책에 집중한다.
책을 어느정도 읽어주고 나면, 둘은 사랑을 하고, 그 후에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런 '의식'이 반복되었다. 
 
 
이 책은 미하엘의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줄줄 써내려갔기 때문에 읽다보면 마치 내가 미하엘이 된 듯 하다. 한나는 미하엘에 대해 궁금해 하지도 않고 자신에 대해 말을 하지도 않는다. 사랑하면 상대에 대해 알고 싶어지는데, 한나를 보며 역시 미하엘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싸울 일이 생길 때는 미하엘은 한나를 잃을 까봐 겁이 나서 굴욕적으로 자기가 잘못했다고 매번 사과하지 않아도 될 일을 사과한다. 사랑했기 때문에 그리고 어리고 순수했기 때문에. 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하엘이 학교로 돌아가 진급도 하고, 또래 학생들이랑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가끔 한나를 찾아가는것을 잊기 시작한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열정스런 마음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점점 한나가 꺼려졌던 것이다. 미하엘이 한나를 멀리하기 시작할 즈음, 한나가 떠난다. 한마디 말도 없이. 미하엘은 자신이 한나를 '배반'했기 때문에 한나가 떠났다고 생각하고 괴로워 한다. 아주 오랫동안 미하엘은 한나가 자신 때문에 떠났으리라 죄책감에 괴로워 한다.
 
 
 
미하엘은 한나를 매우 사랑했음에 틀림없다. 나이와 사랑한다는 행위는 별로 관련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관련이 있을지 모르나,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는 그 자체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것 같다. 한나가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미하엘이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이 책 전체에 너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던 미하엘은 대학생이 된 이후에, 법정 세미나에 참석해서 피의자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 한나를 만나게 된다.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미하엘을 마취된 상태로 이끈다. 미하엘 뿐 아니라 법정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마취된 상태로 만든다. 처음에는 자극적이고, 감정이 복받쳐 오르거나 분노가 솟거나 하던 법정이 재판 횟수를 거듭할 수록 사람들에게 점점 덜 자극적이고, 평범해진다. 상황이 자신과 관련없는 양 객관적으로 보이게 되고, 그러므로써 판단하는데 점점 잔인해 진다.  한나에게 퍼붓는 질문들과 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한나가 점점 불리해지게 만들었다. 재판을 지켜보는 미하엘의 의식 흐름을 따라가며 느낀 것이, 누구의 죄를 판단하고, 기소하는 따위의 일들, 즉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단순화 시키는'일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주 그런 단순화 작업이 사람의 죄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그저 추궁하고 지치게 만드는데 지나지 않기도 한다.
미하엘이 나중에 법관이나 변호사가 아닌 법제사란 직업을 택하게 된 이유도 이 단순화 시키는 일이 자기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쨋든 재판의 내용은 계속 한나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으나, 한나는 진실만을  말하려고 고집스럽게 노력했다. 나치 강제수용소의 감시원이었던 한나는 교회에서 수감자들이 갇혀 불에 타 죽은 일에 대한 책임을 추궁 당하며 재판을 받는 상황이다. 한나는 교회 문을 열어주면 수감자들이 다 도망을 가버릴까봐 겁이 났고, 어쩔 줄 몰라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남자 감시원들이 갑자기 사라진 상황이라 몇 안되는 여자 감시원들이 그 많은 수감자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랐으며, 그들은 어차피 많이 허약해져 있어 곧 죽을것이라 생각했다는 말도. 정말 정직하게, 진솔하게 말한다.
 
 
 
그런데 법정은 이런 진술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 눈치다. 그들 또한 전후 시대에 있어서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겪고 나서도, 친일파들이 여전히 권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민들이 이를 알면서도 넘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법정에 있는 재판관들 뿐 아니라 교회에 불이 났을 때 목격한 마을의 사람들 역시, 모두 치명적인 질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마을의 목격자 중 아무도, 교회 안에서 타 죽는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았고 어쩔 줄 몰라 가만히 구경만 했기 때문이다. 모두 서로의 죄를 알면서도 묵인하고, 그것을 한나라는 사람을 통해 분노로 표출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한나는 재판관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럼 어떻게 했겠어요?' 라고.
일순 법정을 긴장시키는, 그 뼈 있는 질문. 판사는 그에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상황은 한나에게 점점 더 불리해진다. 심지어 나머지 피의자들도 합세해 거짓말을 하며 한나를 궁지에 몰아 넣는다.
 
 
 
마지막에 한나는 딱 한번 거짓을 말한다. 그것은 그녀 평생의 치부에 관한 것이었고, 거짓을 말한것은 그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선택이었다. 그녀는 문맹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재판을 위해 자료를 읽을 수도 없어 미리 준비하지도 못했고, 어쩔 수 없이 강제수용소 감시원 일을 하게 된 것도 다 그녀가 문맹이었으며, 그것을 매우 수치스러워 하고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했던 이유이다.
자기 스스로의 위엄... 이라고 말해야 할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긴다. 그것을 밝히면 자신의 무죄가 입증 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는 미하엘은 그녀가 얼른 밝히기를 바라나 그녀는 끝까지 그러지 않는다.
 
 
 
한나는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미하엘은 끊임없이 한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그 당시 강제수용소가 어떤 곳이었는지에 대한 자료나 지식도 없었기 때문에, 한나가 강제수용소에서 몰인정한 감시원 역할을 했으리라 상상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으며 매우 제한된 부정적인 이미지를 자리잡게 했다. 자신이 원래 알던 한나의 아름답고 젊은 모습과, 그 부정적인 모습이 서로 겹치면서 그는 괴로워 한다. '나는 한나의 범죄를 이해하고, 그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범죄를 이해하려고 할 때마다 그녀의 범죄에 합당한 유죄판결을 결코 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범죄에 합당한 유죄 판결을 내리려고 하면 그녀의 범죄를 이해할 수 있는 한 뼘의 공간도 남아있지 않았다'라고 미하엘은 말한다. 그녀를 이해하고 싶었다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녀를 또다시 배반하는 것이라고...
 
 
 
 
미하엘의 이 의식 흐름이 왜 이렇게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필사적으로,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은 마음. 그런데 이해할 근본적인 자료나 기억, 정보도 없는걸 느꼈을때의 기분. 미하엘은 참 오랫동안 한나에 대해 생각하고, 시달리고, 끊임없이 쫓아다니는 생각에 가끔 지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마치 자신과는 동떨어진 일인 양 마취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미하엘은 한나가 수감된지 8년째 되던 해부터 그녀에게 책을 읽어 녹음해서 소포를 보내기 시작한다. 10년동안 한나는 미하엘이 보내준 카세트 테이프를 이용해서 글을 조금씩 익혔으리라. 어느날 그녀에게서 짤막한 편지가 돌아왔다. 그녀가 드디어 글을 쓸 수 있게 된것이다. 그때 미하엘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찾아가지도, 답장을 쓰지도 않는다. 아마 추억 그대로 남겨두고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어느정도 남의 일인 양 객관적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보고 싶었고, 다시 그때의 힘들었던 일과 생각과 그 분위기의 소용돌이 중심에 놓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기억속으로 빠지기가 두려웠으리라~
 
 
한나는 사면회로부터 사면이 되어, 출소를 앞두게 된다. 그리고 미하엘과 만나게 되는데 뚱뚱하고 나이가 들어버린 한나의 모습에 미하엘은 어쩔 수 없는 거리를 느꼈으리라. 출소하기 하루 전날 한나는 자살을 해버린다.
 
 
한나의 인생이 참 기구하고, 요령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철학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도 만들었다. 정말 내가 한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어야 헸을까?
너무 일찍 평생 가슴에 남을 아프고 진한 경험을 해 버린 미하엘이 안타깝기도 했고... 그 흔적 자체가 미하엘의 인생을 이루는 구성이 되리라.
 
 
 

 
평소 철학적인 생각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의 흐름을 읽다 보면 공감할 때가 많다.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본 나로서는 이 책의 주인공 미하엘의 마음이 조금은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지만, 비교적 잘 읽혔던 것 같다. 그래서 공감할 수 있었고~
 
 
철학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조금 우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미하엘의 경우처럼, 인생에서 어떤 강렬하고 중요했던 일, 가령 사랑이나 어떤 사건... 따위는 개인에게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흔적을 남긴다. 평생이란 시간을 걸쳐 일어나는 이 사건들이 곧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려낸다. 마취된 상태처럼 자신의 일이 아니고 먼, 남의 일처럼 느껴지다가도, 기억 조차 나지 않다가도 어느새 당장 눈앞의 일 처럼, 현재의 생생한 느낌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렇게 멀었다 가까웠다 하면서, 우리의 모습을 점점 변화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
 
 
 

2018년 12월 23일
버즈 전국투어 대구콘서트를 다녀오고 나서..
 
 

 
 
 
 
 
 
 
 
 
 
 

살면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뭔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뭔지 안다는 건 행운이다.

 

현재 나에게는 중학교 시절의 밴드 버즈 콘서트가 그랬듯이

 

버즈 공연이나 콘서트에 가는 게 나를 신나고 행복하게 한다.

 

 

 
 
 
 
 
 
 
 
 
 
 
지난 9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던 조이올팍페스티벌에 가서
너른 잔디밭에서 팡팡 뛰며 버즈 노래를 즐겼을 때는
갔다온 후 일주일동안 에너지가 넘쳤다.
일상을 대하는 게 만족스러웠다.
 

 

좋아하고 오래 지켜보고
지금 어떤 음악을 하는지..
앞으로는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뿐만 아니라 마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이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싶은
 
그렇게 어느새 마음 속 가까운 친구같이 느껴지는 팬과 가수의 관계 ㅎ (우리 엄마는 이해 못하는) 
신기하기도 하고 ㅎ
 

 
 
오늘 콘서트의 특징이 있다면, 멤버들 개인 무대 시간이 있다는 것.
버즈 해체 후 각자의 길을 걸어가며 했던 음악 (경훈의 소풍 앨범 수록곡 빛, 성희의 포스플로어 시절 be with you)
그리고 우현, 준기, 예준은 각자 부르고 싶은 노래들을 불렀는데
마음에 들었다.
 
보통 콘서트에서 멤버들이 이야기를 많이 안해서 오래 봐왔음에도... 거리가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콘에서는 멤버간에 대화가 자유롭게 많이 오가서 편안하고 화기애애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전 나온 미니앨범이 멜론 차트 100순위에 들지 못해 가수도, 팬도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다행인 것은 그래도 주눅들지 않고 서로 으쌰으쌰할 만큼 팬도 가수도 성숙해진 것 같아서..

 

오래 음악을 해나갈 자세를 가진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최근 몇 년의 전국투어 콘서트 중에 무대와 음향이 가장 좋지 않았나 생각이 될 정도로,

악기 음향과 무대 영상이 좋았다.

 

단골로 등장하는 1집 메들리 연주 부분도 편곡을 살짝 바꿔서 새로운 느낌이 들었고 ^^

악기가 훨씬 풍성해진 것 같아 좋았다.

 
 
 
 
 
 
 
 
 
 
 
 
 
 
한동안 현생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만약 돈도 없고 여유도 없는 상황에 무슨 콘서트인가 생각했다면,
그래도 그냥저냥 살아가긴 했겠지만
 
그래도 행복감을 느끼게 주는 버즈 무대이니까...
그들이 땀 흘린 결과물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
 
2019년 1월 12, 13일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리는 서울 콘서트도 기대하며..
오래오래 무대에서 보기를!

<영화 리뷰> 1987: when the day comes (2017)

마음에드는/영화 2018. 1. 29. 23:44 Posted by thankful_genie

영화 1987: 그날이 오면

 

 

 

영화를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의 경우 일상의 반복과 바쁨에 눌려 소위 잡생각만 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진짜 '생각'을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게 영화이다.

1987의 경우 더욱 그 역할을 잘 했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의 가치와, 그 과정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힘의 논리에 대해서도...

 

힘의 논리는 명백하고 예외가 없다.

어디로부터 비롯된 힘인가와 상관 없이 세상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그것을 벗어날 길은 없다.

시대의 소용돌이를 비롯해...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사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존재할까?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 사회의 역할과 행동에서, 정치에서...

수많은 관계에서 우리는 힘이란 거대한 놈과 마주하고, 선택의 기로에 서서 괴로운 순간을 보낸다.

모든 사람은 평화롭고 행복하고 싶어 하는데도...

그런건 신경이나 쓰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놈은 우리에게 다가와 무력감과 분노를 느끼게 만든다.

1987년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 불편하고 만나지않고 싶은 놈과 직면한 시간이었다.

인생에선 참, 이런 일들이 일어나곤 하는 것이다...

 

 

여하튼 그 불편한 놈을 직면했을 때, 우리 모두는 '선택'을 하는데

다수는 자신의 선택이 세상에 가벼운 영향을 주거나, 혹은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 중 한명, 티끌같은 자신의 '가벼운' 선택이 대체 무엇을 바꾸고,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느냔 말이다.

 

제일 쉬운 방법이다.

자신을 속이고 진실 앞에 얇은 가림막을 세우는 것...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점은 시간이 지나서 진실을 마주했을 때 세 배, 네 배로 괴로울 거란 사실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시간이 지나도 자기 반성을 할 줄 모르는 사람.. 자기 합리화의 꺼풀을 벗겨내지 못하는 사람

차라리 본인을 속일지언정, 진실과 타인에 관심을 두지 않는 나약한 사람

오직 본인의 평안만을 생각하는 인간..

그런 인간은 전혀 괴롭지 않을 것이다.

 

 

나비효과, 홀로코스트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홀로코스트의 대표적인 사건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이다.

이후에 국제적으로 반성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면서(물론 이또한 승자의 법칙이지만)

유대인 학살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나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된 걸로 알고 있다.

 

학살의 과정에는 수많은 간수들이 참여했지만, 그들은 참으로 평화로운 선택을 했다.

자신의 이성과 생각을 마비시켰다. 이성이 끼어들려고 할 때마다

"위에서 시키는 것이니 선택에 나의 무게는 들어있지 않다"고 합리화했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고 나의 역할과 선택, 행동의 영향력을 무시했기 때문에 대학살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떨까?

힘의 논리와 직면했을 때 우리의 선택은 어떨까?

그리고 1987년 수많은 연희와 누나, 삼촌의 선택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어떤 선택이 옳고 그른 것이라고 구분지을 수는 없다.

누군가에겐 가족을 잘 지키는 것이 선이고, 누군가에겐 타인이지만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게 선이다.

 

그래서 선택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택의 과정에서 우리 모두 전심을 다했을까?

나의 선택, 작은 행동이 세상에 끼칠 영향을 무시해버리진 않았을까...

그렇게 나를 속여서 마음의 짐을 덜진 않았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오른 질문은

나라면..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과 행동으로 나의 영향력을 세상에 내보냈을까.

 

힘에 부딪힘을 선택하면 어떤 경우든 나는 반토막이 날 수가 있다. 그래서 두렵고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 데에는, 6.10항쟁이 일어나게 된 데에는

타인이 곧 나이고 내가 곧 타인이고, 그들을 사랑하고, 인간이자 생명으로서 연민하는, 공감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곧 힘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힘이 없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수많은 사람의 생각이 모이면 그건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발휘한다고 믿는다.

 

역사를 살펴보면 새로운 시대를 펼친 주인공은 항상 뭉쳐진 약자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약자는 다수이고 권력을 가진 강자는 소수이기 때문이다.

약자 개개인의 '생각'과 '선택' 그리고 '행동'으로부터 진짜 변화가 비롯되어왔다.

단지, 인간은 너무 짧은 생을 살기에.. 그 과정을 선명하게 인지하기 힘들 뿐이다.

 

 

 

영화에선 정의와 진실을 선택한 수많은 개개인이 존재했다.

교도관장, 연희, 이한열 열사, 언론 기자들, 유가족들,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

덕분에 지금은 진실이 밝혀져 1987이란 영화로 부끄러운 시간을 뒤돌아볼 수 있고,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피로 쓴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던가...

국민이 주인인 나라, 나은 세상을 만들어 준 지나간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또한, 평소에 갖고 있던 '진실'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조금 거둘 수 있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이야기는, 거짓말같아 보였는데...

이젠 부정도, 긍정도 안하게 되었다.

물리적인 힘이 무서운 만큼, 정의와 진실을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힘도 거대하니까...

 

 



며칠 전 우연히 질 테일러 볼트의 TED 강연 MY STROKE OF INSIGHT를 보는 중에 깜짝 놀랐다.

뇌과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제 사람의 뇌를 가지고 나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도 처음으로 생생하게 진짜 사람의 뇌가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었다. 



 MY STROKE OF INSIGHT 듣기




그런데 이후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는 날 더욱 새로운 충격에 빠트렸다. 



평생 뇌과학자로 일해 온 그녀가 어느날 아침 좌뇌의 출혈, 즉 뇌졸중을 겪고 느낀 통찰은 신기하고 영적인 것이었다.

너무 놀라워서 이후 그 이야기를 기록한 책 '긍정의 뇌'를 읽어보았다. 



우리의 좌뇌와 우뇌는 매우 성격이 다른 두 아이라는 것. 

좌뇌는 자아, 사물의 경계, 생각, 언어를 관장하고 우뇌는 에너지, 이미지를 담당한다는 것. 

그래서 어느날 아침 뇌출혈로 인해 좌뇌가 망가져가고 있을 때, 즉 그녀 머릿속의 재잘거림, 생각과 자아, 사물의 경계가 사라지고

오롯이 우뇌, 즉 이미지와 에너지만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을 접했을 때 

그녀가 얼마나 마음이 평화롭고 충만하고 따뜻했는지를 적고 있다. 그녀는 강연에서 이를 불교의 '열반' 같았다고 설명했다. 

경계가 없고 오로지 에너지만이 존재하니, 그녀 주위의 모든 분자로 이루어진 물건들이 거대한 에너지로 다가왔단다.

그리고 그녀 역시 거대한 에너지일 뿐, 무엇이 '나'고 무엇이 내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겉모습의 자신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걸 느꼈단다.






요즘 달라이라마, 틱낫한, 에크하르트 툴레 등 영성가들이 쓴 책에 관심이 가서 흥미롭게 읽던 터라, 

그녀의 이야기가 영성가들이 이야기하는 부분들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걸 알았다.




불교에서 화두로 삼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그녀는 그날 경험으로 체험한 것 같았다.



내 머릿속의 생각, 재잘거리고 있는 존재가 사실은 내가 만든 자아일 뿐... 

그 것을 넘어서는 더 크고, 연결되어 있는, 광활한 바탕이 있다는 이야기...

그걸 일컫는 단어는 종교마다 다르다.


그녀는 우리 모두가 우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좌뇌의 재잘거림을 재우고, 우뇌의 역할을 발현시켜 충만함과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하튼 이 책을 읽곤 어느날 마음 잡고 알람을 한시간 맞춘 후에 명상을 해보았다.

나비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날 나는 처음으로 아주 '편안하게' 47분간 명상을 했다. 아빠가 돌아오셔서 인사를 해야하기 전까지.

그리고 명상을 해본 이래 처음으로 내 안의 에너지같은 것을 느꼈다.

내가 지금 어떤 손 모양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앉아있는지 경계가 흐릿해지는 느낌이었고 

몸 안쪽에서 따뜻한 파동이 있는 무언가가 일렁~ 일렁 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분명한 점은, 그걸 느끼고 나서 갑자기 나에 대한 따뜻한 마음, 사랑스러움, 연민, 자랑스러움, 평안함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는 사실이다..

자존감에 대한 책을 읽고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나에 대한 사랑스러움?을 느끼기엔 한계가 있는 것 같았는데 

이날 명상으로 하루 정도는 처음으로 나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고 내가 힘이 있는 존재,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도 명상을 꾸준히 해 볼 생각이다. 

의식적으로 원하는 때에 내 안의 에너지와 바탕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충분히 계속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 김승호

 

 

4장 조금은 느슨하게 함께하는 삶에 대하여

 

 

쓸데없이 칫솔질하면서

흘려보내는 물을

내 몸 중 일부를 하수구로 버리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종이 한 장이 이유 없이 구겨진 채 버려지는 것을

나무의 한 생명이 제값 못하고 사라지듯

아까워해야 한다.

라면박스에 들어 있는 나무젓가락 한 개도

그 몫을 다하도록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나무가

죽어나가기 때문이다.

 

→ 사실 우리의 삶에서 평범하게 주어지는 많은 편의는 누군가 혹은 어떤 생명의 노력과 희생, 에너지가 담긴 것인데

너무 익숙하고 넘쳐나는 나머지, 그 편의를 단면만 보고 흥청망청 낭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었던 글이다.

종이 한 장, 물 한 컵, 나무 젓가락 한 개... 모두 적은 돈으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들이 과연 '제 몫을 다하도록' 나는 잘 사용해 왔을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일회적으로 가치가 다했다고 쓰고 버려왔었지

하지만 너가 나고, 자연이 나고, 생명이 나고, 우주가 나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 몸 중 일부를 하수구로 버리는 것처럼

가치가 다하지 않은 것들을 얼마나 많이 하수구로 버려왔나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삶의 태도는 철학이나 돈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나 스스로를 존중하는 태도의 문제다.

 

지극히 이타적인 행위가 지극히 이기적인 결과를 줄 수 있다는 원리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남을 사랑하고 배려할 이유가 충분하다. 바로 그가 나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동지의 침묵을 기억할 것이다.

 

영국의 작가 올리버 골드스미스는 "침묵은 동의를 뜻한다."고 말했다. 관심 없다는 식의 태도를 빗대어 악을 저지르는 사람뿐 아니라 침묵하는 사람도 공범이라고도 했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편을 보면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인 위기에서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마련한 곳이다."라고 했다.

 

1968년 어느 연설에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결국 우리는 적들이 남긴 말이 아니라, 동지의 침묵을 기억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무관심과 묵인을 나무랐다.

 

→ 내내 뜨끔한 마음이 들었다. 정치나 사회 문제에 불평만 하면서 정작 진정성 있게 알아보고, 관심 갖고, 나만의 시각을 정립하는 일에는 귀찮아해온 침묵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되어서..

 

 

 

내가 갖지 않은 것을 갖고 싶으면 내가 하지 않던 일을 해야 한다.

내가 하지도 않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으면 누군가 곧바로 뺏어간다. 내가 하지 않고 얻은 모든 것은 남의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얻고자 하거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으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것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행동하면 된다. 그래도 안 된다면 무엇을 더 바꿔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 이 글을 계속 읽었다.

참 단순하고 맞는 말이지만, 현실에선 항상 제대로 적용하지 못해서,

이 객관적인 문장조차 긍정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사실 맞다. 무슨 일이든 오래 좌절해 있을 필요가 없다.

무언갈 갖고 싶으면 살펴보고 결심하고 행동하면 된다.

사람의 마음은 예외인 것 같지만 ^^

 

 

어린아이라도 남이 주는 음식은

입에 넣었다가 뱉는데,

남이 주는 생각을

덥석덥석 받아먹는 성인들이 너무 많다.

그렇게 받아먹기 시작하면

내 생각은 나를 대변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나의 생각을 나 스스로가 가지지 못한다면

누가 나를 존중하고 배려할 것인가.

 

내 스스로 판단하기 전에 외적인 환경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외부에서 오는 판단과 환경은 나를 망칠 수도 있고 나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고 믿지만 그러한 믿음은 위험하다.

그렇게 믿는 순간, 다른 사람이나 외부 환경의 정신적 노에로 추락한다.

누군가가 혹은 어떤 외적인 환경이 나를 지배하는 것은 내가 허락할 때뿐임을 알고 인생의 지배권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참 나는 이런 부분이 약해서 오래 흔들렸던 것 같다.

타고 난 우유부단함.. 그리고 부족한 경험

20대야 다 비슷하지 않을까..

타인의 말에, 의견에 지배당해도 봤고, 다시 나와도 봤고,

다시 나와서도 무엇이 맞고 어떤 게 진실인지 항상 힘들어 했고...

서른즘 되니 이제 좀 주관이 생기는 것 같다.

그 느낌은 꽤 좋다.

앞으로는 오히려 너무 내 주관과 고집에 갇히지 않도록 조심해가야겠지.

 

 

솔직함이라는 가면을 쓴 무례함

 

'마음이 빠진 숨김 없는 바르고 곧음'은 날카로운 부엌칼과 같다.

상대를 위해 요리를 해줄 수도 있지만 깊은 상처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와닿았던 이야기들인데

20대에 내가 인간관계에서 제일 혼란스러웠던 부분이

"어디까지 솔직하게 얘기해야 할까?"

내가 살아온 경험으론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솔직한 마음에 대해

어디까지 가감없이 말해주어야 할까?

다들 '솔직함'이 좋다고 하는데 솔직하게 얘기하면 상처를 주는 것 같은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기준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말이 칼인지도 모르고 휘둘렀던 많은 시간들..

타인의 감정에 조금 둔했던 것 같기도 하고...... ㅜㅜ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솔직함이야말로 가장 주관적인 가치며 자신의 판단일 뿐이라고

내가 하는 말이 옳든 그르든 남에게 상처가 됐다면 따지지 말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누가 진작 좀 얘기해주지~

이제야 깨닫는 사실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 김승호

 

 

 

 

1장 부를 이루는 길

 

 

당신이 부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부의 소유자가 아닌 부의 관리자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부를 인격체처럼 생각하면 내가 부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매 순간 혹은 모든 영역에서 저절로 답이 나올 것이다.

 

→ 부의 소유자가 아닌 부의 관리자..

신선하게 다가온다. 평소 사람들이 돈에 대해 생각하는 개념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부를 유지하기 위해

작가는 이를 생명체처럼 대하며 잠시 내 손으로 관리하는 대상으로 바라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란 명언이 떠올랐다.

혹시 지금 부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새로운 부가 다시 들어올 지는 몰라도

지금 누리고 있는 그 부는 지나가는 것이니...

다 가진 것처럼 자만하거나 나를 뽐내는 데 사용하지 말고

많은 사람에게 혜택과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말.

그래야 새로운 부가 그 가치를 알아보고 다시 들어온다는...

신비스러운데?

 

 

 

모든 참된 성공은 고통과 시련을 통해 강해지고 결속되며 가치를 지니게 된다.

애벌레가 번데기에서 탈피하지 않고서는 나비가 될 수 없다.

 

이 우주 안에서는 그 어떤 것도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구든 흔들리며 간다.

빛조차도 중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휘어져 다니듯

 

누구든 고통을 벗어나 살아갈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고통 중에 상당히 많은 고통은 위장된 고통이다.

 

→ 언젠가부터 나비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보면....

약하지만, 아름답기 때문인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은 힘이 있다.

누구든 흔들리며 간다는데... 나는 너무 많은 시간 고통에 멈춰있는 게 아닌지...

나 혼자 힘든 게 아니다.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실패하면 더 나은 방법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기에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지만

멈추는 것은 명백한 손해다.

머리로는 아는데 왜 실천이 잘 안될까?

 

 

이제 꿈을 종이에 적으라.

꿈은 종이에 적으면 목표가 되고, 그것을 자르면 계획이 되고,

계획을 실현하면 현실이 된다.

목표를 작게 조각내어 매번 성공하라

그것이 버릇이 되면 어느새 큰 성공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 언젠가부터 꿈이라는 단어가 너무 멀다.

미래에 언젠가 이룰 것으로 자꾸 미루고 있다.

지금 현실에서는 도저히 길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어떤 신기한 방도가 번쩍 떠오르길 기다리는지도...

반성하게 된다.

 

가수와 팬이 함께 만든 감동적인 공연

 

 

 

전국투어콘서트 일정을 따라 전국을 함꼐 돌아다니며 콘서트를 다니는 열정적인 버즈락인분들과 다르게

나는 경제적 이유로 부산, 대구 콘서트만을 예매해 놓았었다.

그래서 첫번째 부산 공연에 매우 기대를 했다.

 

사실 부산 공연에서는 기타리스트 손성희가 감기 때문에 고열이었고,

보컬 민경훈도 초반에 컨디션에 부담이 있어 보였다. 감기에 걸렸던 걸까...

왠지 모르게 초반 분위기가 조금 다운된 게....

"오늘... 괜찮겠지?" 하는 약간의 걱정이 일었다.

 

 

거의 일주일마다 전국을 도는 투어 중에

어찌 내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까.

지난주에 좋았다가도, 이번주에 나쁠 수 있는거고.

예로, 당일 일주일 전이었던 울산 콘에서는

멤버들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대박 콘서트'란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으니.

오르락내리락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와아ㅡ 열정적인 관중들 덕분이었다.

공연은 가수가, 악기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래서 콘서트는 나쁠 수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뚜렷히 볼 수 있었다.

그들이 공연장에 맴도는 열정을 받아서 갈수록 더 에너지 넘치고 신나했던 것을...

관중은 버즈의 무대를 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하고 열광했고

그들은 그 마음을 그대로 흡수했다.

그래서 다시 감사한 마음을 내뿜었고, 열창했고, 즐겼다.

관중은 그 열정을 다시 받아 증폭시켰다.

 

 

그 어느 때보다,
가수와 관중이 서로 엄청난 에너지를 '주고 받았다'

 

 

특히 남자를 몰라를 부를 때,

남자 관객분들 목소리가 섞인 떼창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끝나고 콘서트장을 나오면서 나는

마치 속에 뜨끈한 국물이 들어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너무 마음이 따뜻했고,

아마 오늘 콘서트를 찾아준 관객과, 버즈 역시도

그 어느 때보다 함께 만든 감동적인 무대에 마음이 따뜻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 콘서트가 더 기대되었다.

2017년 12월 23일


올해 마지막으로 버즈 공연을 보러 대구 콘서트에 가는 기차 안..
버즈 4집 수록곡 그림자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의 오랜 습관들
내 삶을 통틀어 형성된 아주 오래된, 부정적인 종류의 습관들
그것들을 한번에 바꾸려할 순 없겠지만


깨달았다면, 마치 언제든 내가 원하는대로 습관을 뒤바꿀 수 있는 사람인양
그 형식을 깨부수는 단적인 경험을 많이 만들자.


견고한 습관이라도.. 의식적으로 깨부수는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언젠까 깨지지 않을까?
두꺼운 얼음에 금이 가는 것처럼!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불가능이 많은 게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생각과, 자기 방식에 안주하려는 고집이 많아서 불가능해 보이는 거라고.
밝은 면을 보자고.


그렇게 다짐하는 콘서트 가는 길♪♭♬


There is Nothing impossible!!

그런 의미에서, 올해 다녔던 콘서트를 하나씩 꺼내 보았다.

제일 최근에 갔던 2017/12/23 버즈 전국투어콘서트 대구 콘서트!

 

이번에 갔다와서 알았지만, 크리스마스콘은 진리다! 캐롤을 들을 수 있는 기회 + 흥이 장난이 아니다.

 

판넬 옆에서 여신샷을 찍고 싶지만 항상 이상하게 쭈구리가 되곤 한다.

 

2017/12/16 부산콘서트

그리고...

난 이러고 놀았다. ㅎㅎ

이날 정말 추웠는데, 패션을 포기 못하고 코트 입고 갔다가 무지 후회했었다.

 

 

다음은..

무려 9급 공무원 시험을 치고 끝나자마자 기차에 올라 겨우 입장할 수 있었던

소풍콘서트 2017/6/17

소풍콘서트는 몇년째 하는 추세니까 올해도 하겠지?~

버즈는 전국투어콘서트를 항상 겨울에 하기 때문에 콘서트가 고플 떄가 많은데

여름즈음에 하는 소풍콘서트는 단비같다!

팬들과 함께 떠나는 기차여행같은 걸 해보고 싶다고 했던 민경훈씨

그거 우리 언제 해볼건가요~~ ^^ 팬들 기대

 


다음으로 내가 다시 9년만에 버즈락인이 되게 해준 콘서트

2017/1/22 버즈 전국투어콘서트 창원

다 잊고 산줄 알았는데, 그리워하고 있었다고 결정적으로 느끼게 된.

다시 볼 수 있고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던.

감동적이었던 창원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