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그녀 (Her, 2013)

마음에드는/영화 2014. 5. 29. 01:40 Posted by thankful_genie





사실 난 이 영화를 강력추천하진 않는다. 보는 동안 지루했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와 사랑에 빠진다는 흥미로운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에 '개연성'이 없어보인단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테오도르는 외롭고, 사랑에 상처받은 입장임엔 분명했다. 그래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그 욕구를 그녀(사만다)가 채워주었다. 그녀는 항상 상냥하고, 센스 넘치고, 그의 말을 잘 들어주도록 프로그램되었다. 그래서 그의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주었는데,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는 게 공감되지 않았다. 그 역할은 친구여도 가능한 것 아닌가?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진짜 외로워본 적이 없어서 그러는거라고. 자기 말을 잘 들어주고, 상냥하게 대응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간절하고 반가운지를 모르는거라고. 


하지만 난 진짜 외로웠던 적이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지나친 상냥함이 몰입도를 떨어뜨렸던 것 같다.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긍정적인 반응만을 보이는데, 어색했다. 진짜 관계라면, 대립이 없을 수가 없다. 그 속에서 사랑으로, 또 이해로 한 발짝씩 양보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게 관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항상 테오도르의 비위를 맞춰주는 그녀의 모습은 인간이라기 보단 '컴퓨터'같다. 그래서 초반에 그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과정에 공감을 하지 못했던 게 영화를 충분히 느끼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점점 인간같이 진화한다. 사랑, 분노같은 감정을 느끼고, 자존감을 갖게 된다.


1. 자존감. (영화에 만족하지 못했음에도 리뷰를 쓰는 첫 번째 이유이지 싶다. 이 영화는 보고나서 자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서 결국 리뷰를 쓰기로 결정했다.) 


사실 사람은 다 '자기만의 것'이 있다.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이를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관의 관계를, 또 거기서 느끼는 감정을 '절대적'이고 '희생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알게되었다. 상대가 나와 같기를 바라는 건 오만이란 것을. 나와 다른 사람인데 어찌 항상 나와 같을 수 있을까? (그런걸 원하는 미성숙한 사람은 차라리 자기를 복제해서 연애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리고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 항상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심리학자들이 말하길 행복만 느끼며 사는 사람은 절대 없다고 한다. 해피바이러스에 가득찬 사람은 불행을 모르는걸까? 아니다. 부정적 정서를 느끼지만, 동시에 긍정적 정서를 많이 느끼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한다. 사람이 이런데, 사람 간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감정이 어찌 절대적으로 딱 하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랑해서 연애하지만, 그 관계에는 셀 수 없는 감정이 관여한다. 그리고 그 감정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상대가 나와 다르다고 해서 실망하고, 원망하는 건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지사지'.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그냥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만들어가는 조화... 하지만 우린 인내심이 부족하거나,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 관계를 끝내버리는 경우가 있다. 대신 자신의 외로움을 덜어줄 평생의 친구를 하나 잃겠지만... 



사람들은 사랑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사랑받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고 학력으로 휘감고, 여인이 몸을 치장하고 유연한 태도와 고혹적인 웃음을 가지려는 것은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사랑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주는 것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것이 넘쳐나는 환희다.

내 안에 살아있는 떨림을 준다는 것이다.  <출처> 구본형의 변화경영연구소





영화로 돌아와서, 사만다는 처음에 '자기'라고 칭할 만한 자아가 없었다. 그저 테오도르에게 잘 맞춰진 인격이었기에 그가 그녀를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점차 진화하면서 '자기'를 찾게되고, 결국 그를 떠난다. 그가 오랫동안 사랑했던 아내 캐서린과 이혼하게 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를 자신에게 맞춰주고 받아주는 객체(She가 아닌 Her)로 여겨왔던 테오도르. 


- 사만다, 왜 떠난다는거야?


- 이건 마치 책을 읽는 것과 같아요. 내가 깊이 사랑하는 책이죠.

지금 난 그 책을 아주 천천히 읽어요. 그래서 단어와 단어 사이가 정말 멀어져서 그 공간이 무한에 가까운 그런 상태에요.

나는 여전히 당신을 느낄 수 있고, 그리고 우리 이야기의 단어들도 느껴요. 

그렇지만 그 단어들 사이의 무한한 공간에서 나는 내 자신을 찾았어요.


(중략)


하지만 여기가 지금의 내가 있는 곳이에요. 이게 지금의 나에요.

그리고 지금 당신이 날 보내줘요. 당신이 원하는 만큼.

나는 당신의 책 속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요.  <출처> 네이버 리뷰

 


첨엔 "저게 무슨 말이야, 대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서 알겠다. 영화의 메세지를...

사만다가 자기 자신을 찾은 것처럼, 인간은 '자기만의 것'이 있다. 누구와도 다른... 그걸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관계만이 결국 유지되는 것이다.


2. 진실한 대사


대사 한 구절, 구절이 참 진실되다. "정말 맞다." 싶다. 스파이크 존즈는 진실된 사랑을 해본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주옥같은 대사를 쓸 수 없었겠지....


- So, what was like being married?


- There's something that feels so good about sharing life with somebody.


- How do you share your life with somebody?


- We grow up together. We were a big influence on each other.

Both of us grow and change together. 


사랑으로 서로를 성장시키고, 영향을 주고받는 것... 그게 바로 관계다.


3. 영화에서 엿볼 수 있는 미래


미래를 그린 영화들이 그렇듯,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영화에서처럼 사람 간의 소통이 사라지고, 그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지만 어찌할 수 없는 미래가 온다면 어떨까? 주변에 사람이 널렸는데도, 디지털기기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 안에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어떤 '관계'를 갈망하게 된다면... 사람과 직접 마주하고, 생활하며 적응하고 둥글둥글해지는 과정에 피로를 느끼고, 인공지능 OS만이 진정한 나의 쉼터가 된다면?


영화를 보고 뜬금없이 싸이월드와 네이트온이 생각났다. 개방적이면서도 약간의 폐쇄성을 통해 속마음을 드러내기 쉬웠던 싸이월드. 학교 마치면 친구와 대화하기 위해 부랴부랴 컴퓨터를 켜고, 화면에 쪽지창이 반짝 나타나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띄워 주고받던 네이트온 시스템... 아마 카톡에 익숙한 요새 어린이들은 대화를 하기 위해 굳이 컴퓨터까지 켰던 그 때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왜 그리운건지. 사용자가 줄어들어 자연히 안할 수 밖에 없이 된 것처럼, 미래엔 지금을... 지금의 소통 방식을 조금 더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