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범죄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심리 묘사는 부족하고, 감정에만 호소하거나 긴장감만 잔뜩 끌어올린 후 권선징악으로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영화 돈에서는 주인공 조일현(류준열)의 미묘한 심리 변화에 집중하며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심리가 일편적이지 않고 다양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이고 솔직한 주인공이란 느낌이었다.

부자가 되고 싶었다.

초반과 엔딩 대사이자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교훈을 주거나 메세지를 던지지 않는다. 그저 '부자가 되고 싶었다.'는 솔직한 욕망을 이야기한다. 서민 대부분이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명확하다. 돈 없으면 불안하고 여유 없는 한국 사회에서의 생활.. 그걸 탈피하고 싶은 마음.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

 

복분자 농장을 손수 운영하며 일손도 쓰지 않는 부모님이 안쓰럽다.

 

말미에 그의 대사가 마음을 파고 든다. "번호표(유지태)에게 그 돈 다 어디에 쓸 건지 한 번 물어봐 주세요."

부자가 되고 싶은 그이지만, 주식시장을 교란하고 돈을 만지는 것이 그저 '재미있어서' 하는 번호표(유지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와 우리에게 돈은 안락한 삶과 생존의 수단이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승부나 재미의 문제이다. 서민에게 돈은 일정 액수를 넘어가면 그냥 숫자일 뿐, 0이 더 붙고 덜 붙는다고 해서 행복하거나 불행해지지 않는다.

결말 부분에서 조일현이 번호표에 대한 정보를 금융감독원 한지철(조우진)에게 다 넘기면서도, 참고인 조사를 피하기 위해 유유히 지하철을 타고 떠나는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참고인 조사를 받다보면 어느새 피고인이 되어있곤 하더라'는 말을 남긴 채. 도덕적 의무감 같은 숭고한 목적이 아니라 살기 위해, 번호표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의 처지를 탈피하기 위해 영리하게 행동하는 그의 모습이 미워보이지 않는다. 어느 쪽도 100% 믿지 않고 스스로를 방어하는 모습은 비슷한 부류의 다른 영화 주인공들에 비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돈 앞에 갈등하고, 방황하는. 지금 팔까 나중에 팔까 고민하는. 들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 쫑긋하는. 그리고 무엇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우리에게 왠지 위로가 되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