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 김승호

 

 

4장 조금은 느슨하게 함께하는 삶에 대하여

 

 

쓸데없이 칫솔질하면서

흘려보내는 물을

내 몸 중 일부를 하수구로 버리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종이 한 장이 이유 없이 구겨진 채 버려지는 것을

나무의 한 생명이 제값 못하고 사라지듯

아까워해야 한다.

라면박스에 들어 있는 나무젓가락 한 개도

그 몫을 다하도록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나무가

죽어나가기 때문이다.

 

→ 사실 우리의 삶에서 평범하게 주어지는 많은 편의는 누군가 혹은 어떤 생명의 노력과 희생, 에너지가 담긴 것인데

너무 익숙하고 넘쳐나는 나머지, 그 편의를 단면만 보고 흥청망청 낭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었던 글이다.

종이 한 장, 물 한 컵, 나무 젓가락 한 개... 모두 적은 돈으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들이 과연 '제 몫을 다하도록' 나는 잘 사용해 왔을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일회적으로 가치가 다했다고 쓰고 버려왔었지

하지만 너가 나고, 자연이 나고, 생명이 나고, 우주가 나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 몸 중 일부를 하수구로 버리는 것처럼

가치가 다하지 않은 것들을 얼마나 많이 하수구로 버려왔나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삶의 태도는 철학이나 돈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나 스스로를 존중하는 태도의 문제다.

 

지극히 이타적인 행위가 지극히 이기적인 결과를 줄 수 있다는 원리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남을 사랑하고 배려할 이유가 충분하다. 바로 그가 나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동지의 침묵을 기억할 것이다.

 

영국의 작가 올리버 골드스미스는 "침묵은 동의를 뜻한다."고 말했다. 관심 없다는 식의 태도를 빗대어 악을 저지르는 사람뿐 아니라 침묵하는 사람도 공범이라고도 했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편을 보면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인 위기에서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마련한 곳이다."라고 했다.

 

1968년 어느 연설에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결국 우리는 적들이 남긴 말이 아니라, 동지의 침묵을 기억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무관심과 묵인을 나무랐다.

 

→ 내내 뜨끔한 마음이 들었다. 정치나 사회 문제에 불평만 하면서 정작 진정성 있게 알아보고, 관심 갖고, 나만의 시각을 정립하는 일에는 귀찮아해온 침묵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되어서..

 

 

 

내가 갖지 않은 것을 갖고 싶으면 내가 하지 않던 일을 해야 한다.

내가 하지도 않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으면 누군가 곧바로 뺏어간다. 내가 하지 않고 얻은 모든 것은 남의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얻고자 하거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으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것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행동하면 된다. 그래도 안 된다면 무엇을 더 바꿔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 이 글을 계속 읽었다.

참 단순하고 맞는 말이지만, 현실에선 항상 제대로 적용하지 못해서,

이 객관적인 문장조차 긍정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사실 맞다. 무슨 일이든 오래 좌절해 있을 필요가 없다.

무언갈 갖고 싶으면 살펴보고 결심하고 행동하면 된다.

사람의 마음은 예외인 것 같지만 ^^

 

 

어린아이라도 남이 주는 음식은

입에 넣었다가 뱉는데,

남이 주는 생각을

덥석덥석 받아먹는 성인들이 너무 많다.

그렇게 받아먹기 시작하면

내 생각은 나를 대변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나의 생각을 나 스스로가 가지지 못한다면

누가 나를 존중하고 배려할 것인가.

 

내 스스로 판단하기 전에 외적인 환경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외부에서 오는 판단과 환경은 나를 망칠 수도 있고 나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고 믿지만 그러한 믿음은 위험하다.

그렇게 믿는 순간, 다른 사람이나 외부 환경의 정신적 노에로 추락한다.

누군가가 혹은 어떤 외적인 환경이 나를 지배하는 것은 내가 허락할 때뿐임을 알고 인생의 지배권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참 나는 이런 부분이 약해서 오래 흔들렸던 것 같다.

타고 난 우유부단함.. 그리고 부족한 경험

20대야 다 비슷하지 않을까..

타인의 말에, 의견에 지배당해도 봤고, 다시 나와도 봤고,

다시 나와서도 무엇이 맞고 어떤 게 진실인지 항상 힘들어 했고...

서른즘 되니 이제 좀 주관이 생기는 것 같다.

그 느낌은 꽤 좋다.

앞으로는 오히려 너무 내 주관과 고집에 갇히지 않도록 조심해가야겠지.

 

 

솔직함이라는 가면을 쓴 무례함

 

'마음이 빠진 숨김 없는 바르고 곧음'은 날카로운 부엌칼과 같다.

상대를 위해 요리를 해줄 수도 있지만 깊은 상처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와닿았던 이야기들인데

20대에 내가 인간관계에서 제일 혼란스러웠던 부분이

"어디까지 솔직하게 얘기해야 할까?"

내가 살아온 경험으론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솔직한 마음에 대해

어디까지 가감없이 말해주어야 할까?

다들 '솔직함'이 좋다고 하는데 솔직하게 얘기하면 상처를 주는 것 같은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기준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말이 칼인지도 모르고 휘둘렀던 많은 시간들..

타인의 감정에 조금 둔했던 것 같기도 하고...... ㅜㅜ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솔직함이야말로 가장 주관적인 가치며 자신의 판단일 뿐이라고

내가 하는 말이 옳든 그르든 남에게 상처가 됐다면 따지지 말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누가 진작 좀 얘기해주지~

이제야 깨닫는 사실들~

20대 마지막을 맞이하며

기타/일상 2017. 12. 4. 18:24 Posted by thankful_genie

2017년도 끝이 나간다.
얼마 지나면 20대라 불릴 수 없다는 게 아직 어떤 느낌인지 크게 와닿진 않지만.
나이를, 그 중에서도 여자 나이를 무지 따지는 우리 나라의 정서상
나도 곧 20대라는 때가 얼마나 축복받은 시간인지를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20대를 지나온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말이다.
 
 
요즘의 고민은,
내가 생각하기에 내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고 사는 것같다는 점이다.
내 능력치가 120이라면 그중 30만 발휘하고 사는 느낌이다.
 
 
그 간극에는 항상 실행력 부족과 산만함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어 선생님은 집중력의 부재를 이렇게 비유했다.
집중을 하는 건 탄소를 가지고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과 같지만,
산만한 건 그걸 가루내는 것과 같다고...
 
 
평생 여기저기 호기심은 많지만, 강렬한 열정은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다.
모두들 인생엔 뭔갈 하기 좋은 때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공부하기 좋은 때, 연애하기 좋은 때, 결혼하기 좋은 때.
그 모든 때에 약간씩 어긋나게 살고있는 나는...
두려운 것같다.
 
 
내 인생의 마지막에, 여러 우물을 파는 한 아이가
그래도 꽤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이야기하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20대의 끝을 마주한 지금은 답답함과 의심이 앞선다.
 
 
분명한 건, 내 능력치를 최대한.. 그 이상 발휘하며 살고 싶다.
내가 10밖에 안되는 사람이라면 10을 발휘하며 살면 성공한 인생일테고
 
 
나는 어디로 가고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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