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2019!

기타/일상 2019. 1. 1. 09:32 Posted by thankful_genie

누군가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새해를 생생하게 보고 있다.

나는 하루 하루

내가 원하는 내 모습

으로 변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올해도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자..

새해야 반가워~
이번에도 잘 해보자! ^^


'기타 > 일상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 드디어, 제주다 2편  (0) 2019.02.24
<여행> 드디어, 제주다 1편  (0) 2019.02.24
스물아홉의 크리스마스  (0) 2017.12.25
정말 좋아한다는 것이란...  (0) 2017.12.12
20대 마지막을 맞이하며  (0) 2017.12.04

 
 
 
초반부를 읽을때만 해도 열다섯의 어린 학생과 삼십대 여자의 충격적 사랑의 모양새에, 그것도 육체적 사랑에 포커스를 맞추어 흥미 위주로 그린 책이라 생각했다. 사실 미하엘과 한나가 만나서 사랑을 나누게 되는 처음 과정은 어떻게 보면 역겹고, 한나라는 인물에 대해서 반감을 가질 정도로 이해가 안되는 장면이기는 하다. 그 부분을 읽을때만 해도 한나라는 여인은 젊고 순진한 어린 청년을 잠자리 상대로만 즐기는, 아주 천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부터 한나는 미하엘에게 관계를 하기 전에 꼭 책을 읽어주기를 요구한다. 책을 읽으며 흐름을 따라가는 일은 꽤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그 동안 미하엘도 들끓던 욕망이 진정이 되곤 했다. 한나는 미하엘이 낭독해 주는 책을 들으면서, 직접 참여하여 격하게 반응하며 자기 의견을 말하다가도, 어느 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책에 집중한다.
책을 어느정도 읽어주고 나면, 둘은 사랑을 하고, 그 후에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런 '의식'이 반복되었다. 
 
 
이 책은 미하엘의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줄줄 써내려갔기 때문에 읽다보면 마치 내가 미하엘이 된 듯 하다. 한나는 미하엘에 대해 궁금해 하지도 않고 자신에 대해 말을 하지도 않는다. 사랑하면 상대에 대해 알고 싶어지는데, 한나를 보며 역시 미하엘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싸울 일이 생길 때는 미하엘은 한나를 잃을 까봐 겁이 나서 굴욕적으로 자기가 잘못했다고 매번 사과하지 않아도 될 일을 사과한다. 사랑했기 때문에 그리고 어리고 순수했기 때문에. 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하엘이 학교로 돌아가 진급도 하고, 또래 학생들이랑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가끔 한나를 찾아가는것을 잊기 시작한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열정스런 마음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점점 한나가 꺼려졌던 것이다. 미하엘이 한나를 멀리하기 시작할 즈음, 한나가 떠난다. 한마디 말도 없이. 미하엘은 자신이 한나를 '배반'했기 때문에 한나가 떠났다고 생각하고 괴로워 한다. 아주 오랫동안 미하엘은 한나가 자신 때문에 떠났으리라 죄책감에 괴로워 한다.
 
 
 
미하엘은 한나를 매우 사랑했음에 틀림없다. 나이와 사랑한다는 행위는 별로 관련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관련이 있을지 모르나,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는 그 자체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것 같다. 한나가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미하엘이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이 책 전체에 너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던 미하엘은 대학생이 된 이후에, 법정 세미나에 참석해서 피의자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 한나를 만나게 된다.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미하엘을 마취된 상태로 이끈다. 미하엘 뿐 아니라 법정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마취된 상태로 만든다. 처음에는 자극적이고, 감정이 복받쳐 오르거나 분노가 솟거나 하던 법정이 재판 횟수를 거듭할 수록 사람들에게 점점 덜 자극적이고, 평범해진다. 상황이 자신과 관련없는 양 객관적으로 보이게 되고, 그러므로써 판단하는데 점점 잔인해 진다.  한나에게 퍼붓는 질문들과 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한나가 점점 불리해지게 만들었다. 재판을 지켜보는 미하엘의 의식 흐름을 따라가며 느낀 것이, 누구의 죄를 판단하고, 기소하는 따위의 일들, 즉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단순화 시키는'일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주 그런 단순화 작업이 사람의 죄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그저 추궁하고 지치게 만드는데 지나지 않기도 한다.
미하엘이 나중에 법관이나 변호사가 아닌 법제사란 직업을 택하게 된 이유도 이 단순화 시키는 일이 자기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쨋든 재판의 내용은 계속 한나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으나, 한나는 진실만을  말하려고 고집스럽게 노력했다. 나치 강제수용소의 감시원이었던 한나는 교회에서 수감자들이 갇혀 불에 타 죽은 일에 대한 책임을 추궁 당하며 재판을 받는 상황이다. 한나는 교회 문을 열어주면 수감자들이 다 도망을 가버릴까봐 겁이 났고, 어쩔 줄 몰라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남자 감시원들이 갑자기 사라진 상황이라 몇 안되는 여자 감시원들이 그 많은 수감자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랐으며, 그들은 어차피 많이 허약해져 있어 곧 죽을것이라 생각했다는 말도. 정말 정직하게, 진솔하게 말한다.
 
 
 
그런데 법정은 이런 진술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 눈치다. 그들 또한 전후 시대에 있어서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겪고 나서도, 친일파들이 여전히 권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민들이 이를 알면서도 넘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법정에 있는 재판관들 뿐 아니라 교회에 불이 났을 때 목격한 마을의 사람들 역시, 모두 치명적인 질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마을의 목격자 중 아무도, 교회 안에서 타 죽는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았고 어쩔 줄 몰라 가만히 구경만 했기 때문이다. 모두 서로의 죄를 알면서도 묵인하고, 그것을 한나라는 사람을 통해 분노로 표출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한나는 재판관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럼 어떻게 했겠어요?' 라고.
일순 법정을 긴장시키는, 그 뼈 있는 질문. 판사는 그에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상황은 한나에게 점점 더 불리해진다. 심지어 나머지 피의자들도 합세해 거짓말을 하며 한나를 궁지에 몰아 넣는다.
 
 
 
마지막에 한나는 딱 한번 거짓을 말한다. 그것은 그녀 평생의 치부에 관한 것이었고, 거짓을 말한것은 그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선택이었다. 그녀는 문맹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재판을 위해 자료를 읽을 수도 없어 미리 준비하지도 못했고, 어쩔 수 없이 강제수용소 감시원 일을 하게 된 것도 다 그녀가 문맹이었으며, 그것을 매우 수치스러워 하고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했던 이유이다.
자기 스스로의 위엄... 이라고 말해야 할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긴다. 그것을 밝히면 자신의 무죄가 입증 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는 미하엘은 그녀가 얼른 밝히기를 바라나 그녀는 끝까지 그러지 않는다.
 
 
 
한나는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미하엘은 끊임없이 한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그 당시 강제수용소가 어떤 곳이었는지에 대한 자료나 지식도 없었기 때문에, 한나가 강제수용소에서 몰인정한 감시원 역할을 했으리라 상상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으며 매우 제한된 부정적인 이미지를 자리잡게 했다. 자신이 원래 알던 한나의 아름답고 젊은 모습과, 그 부정적인 모습이 서로 겹치면서 그는 괴로워 한다. '나는 한나의 범죄를 이해하고, 그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범죄를 이해하려고 할 때마다 그녀의 범죄에 합당한 유죄판결을 결코 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범죄에 합당한 유죄 판결을 내리려고 하면 그녀의 범죄를 이해할 수 있는 한 뼘의 공간도 남아있지 않았다'라고 미하엘은 말한다. 그녀를 이해하고 싶었다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녀를 또다시 배반하는 것이라고...
 
 
 
 
미하엘의 이 의식 흐름이 왜 이렇게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필사적으로,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은 마음. 그런데 이해할 근본적인 자료나 기억, 정보도 없는걸 느꼈을때의 기분. 미하엘은 참 오랫동안 한나에 대해 생각하고, 시달리고, 끊임없이 쫓아다니는 생각에 가끔 지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마치 자신과는 동떨어진 일인 양 마취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미하엘은 한나가 수감된지 8년째 되던 해부터 그녀에게 책을 읽어 녹음해서 소포를 보내기 시작한다. 10년동안 한나는 미하엘이 보내준 카세트 테이프를 이용해서 글을 조금씩 익혔으리라. 어느날 그녀에게서 짤막한 편지가 돌아왔다. 그녀가 드디어 글을 쓸 수 있게 된것이다. 그때 미하엘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찾아가지도, 답장을 쓰지도 않는다. 아마 추억 그대로 남겨두고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어느정도 남의 일인 양 객관적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보고 싶었고, 다시 그때의 힘들었던 일과 생각과 그 분위기의 소용돌이 중심에 놓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기억속으로 빠지기가 두려웠으리라~
 
 
한나는 사면회로부터 사면이 되어, 출소를 앞두게 된다. 그리고 미하엘과 만나게 되는데 뚱뚱하고 나이가 들어버린 한나의 모습에 미하엘은 어쩔 수 없는 거리를 느꼈으리라. 출소하기 하루 전날 한나는 자살을 해버린다.
 
 
한나의 인생이 참 기구하고, 요령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철학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도 만들었다. 정말 내가 한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어야 헸을까?
너무 일찍 평생 가슴에 남을 아프고 진한 경험을 해 버린 미하엘이 안타깝기도 했고... 그 흔적 자체가 미하엘의 인생을 이루는 구성이 되리라.
 
 
 

 
평소 철학적인 생각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의 흐름을 읽다 보면 공감할 때가 많다.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본 나로서는 이 책의 주인공 미하엘의 마음이 조금은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지만, 비교적 잘 읽혔던 것 같다. 그래서 공감할 수 있었고~
 
 
철학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조금 우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미하엘의 경우처럼, 인생에서 어떤 강렬하고 중요했던 일, 가령 사랑이나 어떤 사건... 따위는 개인에게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흔적을 남긴다. 평생이란 시간을 걸쳐 일어나는 이 사건들이 곧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려낸다. 마취된 상태처럼 자신의 일이 아니고 먼, 남의 일처럼 느껴지다가도, 기억 조차 나지 않다가도 어느새 당장 눈앞의 일 처럼, 현재의 생생한 느낌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렇게 멀었다 가까웠다 하면서, 우리의 모습을 점점 변화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
 
 
 

2018년 12월 23일
버즈 전국투어 대구콘서트를 다녀오고 나서..
 
 

 
 
 
 
 
 
 
 
 
 
 

살면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뭔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뭔지 안다는 건 행운이다.

 

현재 나에게는 중학교 시절의 밴드 버즈 콘서트가 그랬듯이

 

버즈 공연이나 콘서트에 가는 게 나를 신나고 행복하게 한다.

 

 

 
 
 
 
 
 
 
 
 
 
 
지난 9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던 조이올팍페스티벌에 가서
너른 잔디밭에서 팡팡 뛰며 버즈 노래를 즐겼을 때는
갔다온 후 일주일동안 에너지가 넘쳤다.
일상을 대하는 게 만족스러웠다.
 

 

좋아하고 오래 지켜보고
지금 어떤 음악을 하는지..
앞으로는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뿐만 아니라 마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이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싶은
 
그렇게 어느새 마음 속 가까운 친구같이 느껴지는 팬과 가수의 관계 ㅎ (우리 엄마는 이해 못하는) 
신기하기도 하고 ㅎ
 

 
 
오늘 콘서트의 특징이 있다면, 멤버들 개인 무대 시간이 있다는 것.
버즈 해체 후 각자의 길을 걸어가며 했던 음악 (경훈의 소풍 앨범 수록곡 빛, 성희의 포스플로어 시절 be with you)
그리고 우현, 준기, 예준은 각자 부르고 싶은 노래들을 불렀는데
마음에 들었다.
 
보통 콘서트에서 멤버들이 이야기를 많이 안해서 오래 봐왔음에도... 거리가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콘에서는 멤버간에 대화가 자유롭게 많이 오가서 편안하고 화기애애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전 나온 미니앨범이 멜론 차트 100순위에 들지 못해 가수도, 팬도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다행인 것은 그래도 주눅들지 않고 서로 으쌰으쌰할 만큼 팬도 가수도 성숙해진 것 같아서..

 

오래 음악을 해나갈 자세를 가진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최근 몇 년의 전국투어 콘서트 중에 무대와 음향이 가장 좋지 않았나 생각이 될 정도로,

악기 음향과 무대 영상이 좋았다.

 

단골로 등장하는 1집 메들리 연주 부분도 편곡을 살짝 바꿔서 새로운 느낌이 들었고 ^^

악기가 훨씬 풍성해진 것 같아 좋았다.

 
 
 
 
 
 
 
 
 
 
 
 
 
 
한동안 현생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만약 돈도 없고 여유도 없는 상황에 무슨 콘서트인가 생각했다면,
그래도 그냥저냥 살아가긴 했겠지만
 
그래도 행복감을 느끼게 주는 버즈 무대이니까...
그들이 땀 흘린 결과물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
 
2019년 1월 12, 13일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리는 서울 콘서트도 기대하며..
오래오래 무대에서 보기를!